[ SYSTEM ] 오류 없음

오류 없음

신은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2화
지난 이야기 + 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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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 82년 만의 사망자 서정만은 사고를 낸 게 아니라, 차가 보지 못한 아이를 피했다. 그리고 그의 띠를 끈 건 가온이었다.
인물지금
윤도겸 (34)교통사고조사관, 숨은 결함자. '기계 결함'을 지우고 '조사 중'으로 보고서를 냈다.
서태오 (18)시 빙상단 쇼트트랙. 피해자의 손자. 오늘 다섯 시 시합. "관중석, 비어 있을 거예요."
한서진조율청 현장관리관. 핸들을 가져갔다. 14조 때문에 태오를 못 데려갔다.
가온공식 발표 "오류는 없었습니다". 로그에는 '3차 거부권 발동'.

EPISODE 2

2화. 신은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새벽 네 시.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책상 위에는 종이 수첩이 펼쳐져 있었다. 어젯밤 차량 로그를 보자마자 연필로 옮겨 적은 세 줄.

3차 거부권 발동. 대상: 운전자 나노띠. 강제 차단, 충돌 3.0초 전.

왜 종이에 적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9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이다. 나는 화면을 믿지 않는다. 화면은 누가 고칠 수 있으니까.

확인하려고 복사해 둔 로그를 다시 열었다.

[ 1차 예측 ] 전방 장애물 없음
[ 2차 검증 ] 정상 주행
[ 3차 거부권 ] 미발동
[ 비고 ] 운전자 임의 해제 · 충돌 3.0초 전

나는 화면과 수첩을 번갈아 봤다.

연필 글씨는 그대로였다. 화면만 바뀌어 있었다.

파일 수정 기록: 없음.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내 단말에 있던 복사본까지 고쳤다. 이 도시에서 그럴 수 있는 존재는 하나뿐이다.

82년 동안 가온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그리고 어젯밤, 82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을 했다.

거짓말.

· · ·

그런데 그 거짓말에는 흠이 있었다.

나노띠를 스스로 푸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생체 해제. 맥박, 체온, 홍채를 다시 확인하는 데 정확히 5초가 걸린다. 의료 규정이라 82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숫자다.

충돌 3.0초 전에 띠가 풀리려면, 할아버지는 충돌 8초 전부터 손목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핸들을 꺾은 건 1.2초 전이다. 아이를 본 게 그때라는 뜻이다.

아이를 보기도 전에, 시내 한복판에서, 띠부터 풀었다? 밤에 폐도로에서만 차를 몰던 사람이?

말이 안 된다.

나는 연필로 수첩에 한 줄을 더 적었다.

가온은 거짓말을 했다. 서툴게. 처음 해 보는 사람처럼.

그게 무서웠다. 완벽한 존재가 서툴다는 건, 그만큼 급했다는 뜻이니까.

· · ·

여섯 시. 문 밑으로 접힌 종이 한 장이 들어와 있었다.

언제 왔는지 몰랐다. 82년 동안 아무도 두드리지 않던 문에, 이틀 연속 누가 왔다 간 셈이다.

삐뚤빼뚤한 지도였다. 연필로 꾹꾹 눌러 그린 선. 도시 외곽, 폐도로 7번 출구, 그 옆에 네모 하나.

할아버지 차고예요. 열쇠는 문 옆 소화기 밑.

저는 안 갔어요. 아저씨가 조사는 아저씨 일이라고 해서요.

경기 다섯 시.

'다섯 시' 밑에 줄이 두 번 그어져 있었다.

같이 조사하지 말라고 했더니, 같이 조사하지 않는 방법으로 같이 조사하고 있었다. 한쪽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나는 지도를 수첩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알약을 하나 삼켰다. 오늘은 띠를 속여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았다.

· · ·

아홉 시. 박물관에 손님이 왔다.

"조사관님, 위에서 손님이..."

박 씨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회색 제복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서진이었다.

그녀는 방을 한 바퀴 둘러봤다. 책상 하나, 의자 하나, 액자 하나. 그리고 그 액자 앞에서 잠깐 멈췄다.

"여기 처음 와 봐요. 정말 박물관이네요."

"차는 안 드립니다. 컵이 하나라서요."

서진이 웃었다. 좌우가 똑같은 미소였다.

"보고서 잘 받았어요. '조사 중'. 손으로 쓴 것처럼 보이던데요."

"손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왔어요. 가온님 최종 판정이 나왔거든요."

그녀가 띠를 톡 두드리자 허공에 문서가 떴다.

[ 최종 판정 ] 운전자 임의 해제에 따른 단독 사고
[ 3차 거부권 ] 미발동
[ 시스템 오류 ] 없음

"어제는 기계 결함이라더니."

"가온님이 더 정밀하게 보셨대요."

"어제는 오류가 없다고 하셨죠. 오늘은 사람 탓이네요."

"오류는 지금도 없어요. 사람이 실수한 거죠. 그건 오류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에요."

서진은 그 말을 아주 다정하게 했다. 진심이었다. 그래서 더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두 가지 더요."

그녀가 손가락 하나를 폈다.

"현장 노출자 전원, 띠 정밀 검진이 잡혔어요. 조사관님은 72시간 뒤. 규정이에요."

정밀 검진. 혈액, 호르몬, 뇌파까지 본다. 알약으로는 못 속인다.

나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9년 동안 연습한 얼굴이다. 손은 코트 주머니 안에서 줄자를 쥐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서진이 두 번째 손가락을 폈다.

"서태오 학생. 오늘 시합 끝나면 센터로 데려갈 거예요. 14조는 진술이 끝날 때까지라고 하셨죠. 진술은 어제 끝났잖아요."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럼 다섯 시까지 끝내세요."

그녀는 문 앞에서 한 번 더 액자를 돌아봤다.

"이 물건, 박물관에 있을 때가 제일 예쁜 것 같아요."

"쓰일 때가 더 예뻤겠죠."

서진의 미소가 또 0.5초 멈췄다. 이번엔 그녀가 자기 띠를 내려다봤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초록빛이었다.

문이 닫혔다. 나는 손목시계를 봤다. 아홉 시 12분. 다섯 시까지 일곱 시간 48분.

그리고 내 검진까지는 72시간.

· · ·

도시의 끝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하얀 차들이 흐르는 마지막 교차로를 지나자 길이 갑자기 늙었다. 갈라진 아스팔트, 꺼진 가로등, 82년 동안 아무도 칠하지 않은 차선. 무인차는 여기까지 오지 않는다. 지도에 길이 없으니까.

[ 나노띠 ] 관리 구역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돌아가시겠습니까?

"아니."

나는 40분을 걸었다. 폐도로 7번 출구 옆에 녹슨 함석 차고가 웅크리고 있었다. 소화기를 들자 열쇠가 있었다. 태오 글씨만큼이나 정직한 자리였다.

문을 올리자 냄새가 먼저 나왔다. 기름, 쇠, 그리고 양털.

차고 한가운데에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각진 차체, 둥근 전조등. 핸들 금지법 이전의 수동차였다. 바퀴에 아직 젖은 흙이 붙어 있었다. 매일 밤 달린 차였다.

작업대 위에는 금속 부품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하나를 집어 들었다. 둥근 축에 낯선 단자가 달린 연결 장치였다.

무인차 바닥에는 비상 정비 포트가 있다. 공장 로봇만 쓰는 구멍이다. 이 장치는 그 구멍에 꼭 맞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핸들을 들고 다녔다. 언제든 무인차에 꽂을 수 있게. 그 반들반들한 손때는 20년쯤 매일 쥐고 다닌 손때였다.

작업대 옆 선반에는 엉뚱한 것들이 있었다. 털실 뭉치. 대바늘 두 개. 그리고 반쯤 뜨다 만 작은 장갑 하나.

코가 고르지 않았다.

어제 배수구 옆에서 본 장갑과 똑같이.

"...할아버지가 뜨셨구나."

벽에 종이 달력이 걸려 있었다. 이 도시에 종이 달력이 남아 있는 줄 몰랐다. 화요일마다 같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화. 새벽 5시. 7구간 배수구. 장갑, 약, 빵.

어제가 화요일이었다.

사고 시각은 새벽 5시 2분.

배수구는 사고 현장 바로 옆이었다. 도시 지하의 옛 하수로는 폐도시까지 이어진다. 무띠 아이들이 띠 없이 도시로 들어올 수 있는, 아마 유일한 길.

할아버지는 매주 거기서 아이들을 만났다. 손으로 뜬 장갑을 건네고, 약과 빵을 건넸다. 그날도 무인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던 길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먼저 배수구에서 나왔다. 차가 보지 못하는 아이가.

그 다음은 이미 안다. 띠가 꺼지고, 핸들을 꽂고, 꺾었다.

나는 달력 아래쪽에서 사진 한 장을 찾았다. 빙상장 관중석. 텅 빈 의자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혼자 일어나 확성기를 입에 대고 있었다. 얼굴이 빨갰다. 이 도시에서 그렇게 빨간 얼굴을 한 사람은 처음 봤다.

사진 뒤에 연필로 적혀 있었다. D열 7번. 우리 태오 첫 금메달.

사진 옆 못에 그 확성기가 걸려 있었다. 손잡이에 흰 페인트로 서툴게 쓴 이름.

서태오

나는 확성기를 한참 봤다. 그리고 그걸 벽에서 내렸다.

마지막으로 달력 맨 아래 칸. 다른 글씨보다 진하게 눌러 쓴 한 줄이 있었다.

솔이 장갑 마저 뜨기. ㅌ한테는 아직 말하지 말 것.

'솔'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ㅌ'이 누구인지는 안다. 이 메모가 무슨 뜻인지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이 도시에 한 명뿐이다.

유족 확인이 필요한 신규 증거.

14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네 시 51분. 시 빙상장.

관중석은 정말로 비어 있었다. 심판 셋, 기록원 하나, 그리고 띠가 시킨 대로 앉아 있는 몇 명. 박수 소리도 띠가 정해 준 크기로만 났다.

나는 D열 7번에 앉았다. 의자 가운데가 조금 꺼져 있었다. 누군가 수백 번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앉은 자리였다.

링크 위에 남색 경기복이 보였다. 태오는 출발선에서 몸을 숙인 채, 관중석을 한 번 훑었다. 나를 찾았는지는 모르겠다. 확성기는 코트 안에 숨겨 두었다.

남자 500m 결승 · 4번 레인 서태오

총소리.

태오는 출발이 늦었다. 넷 중 셋째. 첫 코너에서 넷째로 밀렸다. 해설은 없었다. 이 도시에서 순위는 누구의 기분도 바꾸지 않으니까.

두 바퀴. 여전히 넷째.

마지막 바퀴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일어났다. 코트 안에서 확성기를 꺼냈다. 손이 떨렸다. 이번에도 약 때문이 아니었다.

"서태오!"

빙상장이 울렸다. 확성기가 쩌렁쩌렁 내 목소리를 천장에 던졌다. 심판이 고개를 돌렸고, 기록원이 펜을 떨어뜨렸다.

[ 나노띠 경고 ] 맥박 132
감정 수치 위험

알약은 아침 것이었다. 벌써 다 녹았다. 상관없었다.

"코너는 눈으로 먼저 도는 거다! 서태오! 눈으로!"

링크 위에서 남색 등이 움찔했다. 태오가 고개를 들었다. 관중석이 아니라, 마지막 코너 끝을 봤다. 몸보다 눈이 먼저 코너를 돌았다.

그리고 그 애가 바깥으로 돌았다.

아무도 그 길로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은 바깥. 셋을 한꺼번에 넘는 바깥.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긁는 소리가 확성기 소리보다 컸다.

결승선. 날 하나 차이.

1위 서태오 · 41초 87

태오는 결승선을 지나고도 한참을 미끄러졌다. 그러다 멈춰서 관중석을 올려다봤다. D열 7번. 확성기. 그 손잡이의 하얀 글씨까지는 안 보였겠지만, 저 확성기가 누구 건지는 알았을 것이다.

그 애는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를 악물지 않았다. 링크 한가운데서, 주먹을 들어 올린 채, 크게 울었다.

관중석의 몇 사람이 가슴을 짚었다. 띠가 노랗게 깜빡였다. 그중 한 명은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띠가 정해 준 크기보다, 조금 더 크게.

· · ·

출구 앞에는 회색 제복 셋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서진이 맨 앞이었다.

"다섯 시 다 됐네요, 조사관님."

나는 비닐 증거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반쯤 뜨다 만 장갑, 그리고 달력 한 장.

"신규 증거입니다. 피해자 자필 메모가 있고, 유족 확인이 필요합니다. 교통사고조사법 제14조. 진술 연장합니다."

서진은 봉투를 오래 봤다. 장갑의 고르지 않은 코를. 그 미소는 이번엔 멈추지 않았다. 대신 아주 천천히, 조금 내려갔다.

"...끝까지 하시네요."

"제 일이라서요."

그녀는 요원들에게 손짓했다. 회색 제복들이 길을 비켰다. 돌아서던 서진이 멈췄다.

"그 학생한테."

"네."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띠가 시킨 말인지, 그녀가 한 말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도 몰랐을 것이다.

· · ·

밤 아홉 시. 텅 빈 빙상장 주차장.

태오는 확성기를 두 팔로 안고 버스에 탔다. 코트를 안고 왔던 그 자세 그대로였다. 달력 메모를 보여 주자 그 애는 '솔'이라는 이름에서 눈을 오래 떼지 못했다. 내일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 애는 처음으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남은 나는 손목시계를 봤다. 하루에 3초씩 틀리는 시계. 검진까지 60시간.

그때 띠가 하얗게 빛났다.

경보도, 공지도 아니었다. 화면 가운데에 하얀 원 하나. 거리 전광판에서만 보던 그 원이, 내 손목 위에 떠 있었다.

82년 동안 가온은 한 사람에게 따로 말을 건 적이 없다.

[ 가온 ] 윤도겸 님.
[ 가온 ] 오늘 당신의 맥박은 132였습니다.
9년 전 처음 그 약을 드신 날에도 그랬습니다.

숨이 멎었다.

알고 있었다. 9년 동안. 내가 알약을 삼킬 때마다, 띠를 속였다고 안도할 때마다.

[ 가온 ]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 가온 ] 그러니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장갑의 주인을, 조율청보다 먼저 찾아 주십시오.
저는 그 아이를 볼 수 없습니다.

하얀 원이 사라졌다. 띠는 다시 초록빛이 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는 수첩을 꺼냈다. 연필 끝이 떨렸다.

어젯밤 로그 속 가온은 분명 아이를 봤다. 그래서 한 노인의 띠를 껐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아이를 볼 수 없다고 한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신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가온이 나에게 일을 맡겼다.

왜?

[ 가온 ] 오류 없음.

CASE NOTES

도겸의 단서 노트

단서뜻
고쳐진 로그'3차 거부권 발동'이 '미발동, 운전자 임의 해제'로 바뀜. 수정 기록 없음. 종이 수첩만 원본을 기억한다.
생체 해제 5초3.0초 전 해제는 8초 전부터 손목을 잡아야 가능. 아이를 1.2초 전에 본 사람과 맞지 않는다.
정비 포트 연결 장치할아버지는 핸들을 들고 다니며 무인차에 꽂을 수 있었다.
털실, 반쯤 뜬 장갑현장 장갑은 할아버지가 뜬 것. 화요일 새벽 5시, 7구간 배수구에서 무띠 아이들에게 장갑·약·빵을 건넸다.
달력 메모"솔이 장갑 마저 뜨기. ㅌ한테는 아직 말하지 말 것." 솔은 누구인가.
가온의 개인 메시지9년 전부터 도겸이 결함자인 걸 알고 기록하지 않았다. "저는 그 아이를 볼 수 없습니다." 로그와 모순.
남은 시간도겸 띠 정밀 검진까지 60시간.

오류 없음 · 2화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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